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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간투자사업/(6) 업계환경

[경기일보-칼럼]경전철, 무엇이 문제인가

 

‘언어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라는 말이 있다. 계절과 나이에 따라 화장을 달리 하듯, 용어도 시대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 한다.

‘경전철’이 그러하다. 약 15년 전부터 경전철은 중(重)전철을 건설할 수 없는 지역의 새로운 대중교통수단으로 각광받아 왔다. 교통정체가 심한 지역에서 버스를 대체하는 수단으로, 독립운행공간 확보로 정시성을 갖춘 편리한 대중교통이라는 이점 때문이다.

여기에 첨단 무인운전을 도입해 인건비를 절감하고 노사분규 피해도 줄여 경전철의 단점은 밝은 화장으로 덮여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미 완공된 용인경전철은 MRG(최소운영수입보장)와 부실시공 문제로 개통하지 못하고 있다.

김해경전철은 개통은 했으나 예측수요와 실제수요간 차이로 책임소재소송에 휘말려 있다. 개통시점이 되면서 가려져 있던 단점이 속출하는 경전철은 이해 집단간 갈등으로 어두운 화장이 더욱 두꺼워지고 있다.

지자체장의 공적을 쌓기 위해 일부 무리하게 추진한 경전철 사업은 수요의 과다예측에 따른 과도한 MRG 지급으로 지자체의 재정파탄을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문제가 민간투자 방식으로 경전철 사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는 볼 수 없다. 중앙정부가 재정사업으로 추진했다 하더라도 지금 겪고 있는 문제점을 피해갈 수는 없다.

경전철 외에 재정사업으로 진행한 신공항철도, 대구와 대전 그리고 서울의 도시철도도 상황은 비슷하다. 신공항철도는 개통년도 실제수요가 예측수요의 6.4%에 불과해 한국철도공사가 인수하여 운영하고 있다.

대전과 대구의 도시철도 영업수익은 총운영비의 30%, 서울 도시철도는 68%에 달할 뿐이다. 차액은 고스란히 국민 세금 부담으로 남게 된다. 결국 어떤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든 재무적 타당성을 갖추지 못한 사업은 세금으로 그 비용을 충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재무적 타당성도 없는 사업을 왜 무리하게 추진해야 하는 걸까? 국가가 사업의 추진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은 재무적 타당성이 아닌 경제적 타당성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타당성은 사회 전체 편익과 사업소요 비용을 비교해서 산정하는 반면 재무적 타당성은 사업별 비용과 수입을 비교해서 산정한다.

철도사업의 사회 전체 편익은 철도이용자의 시간과 비용 절감, 승용차 이용객의 철도 이동으로 얻어지는 도로의 혼잡비용 감소, 환경오염 방지, 교통사고 감소 등을 모두 포함한다. 그러나 개별사업 측면에서의 수입은 이용자 요금수입 및 부대시설 운영수입 뿐이다.

철도사업은 부담 없는 요금 체계로 철도이용자를 증대시키는 등 그 혜택을 국민 모두에게 베푸는 사회적 편익 사업이다.

경전철은 미래지향적인 도시교통수단이다. 도시의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녹색교통수단이면서 안전하고 편리한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며, 유가 및 인건비 상승에 따른 위험도 없다. 교통시설은 당장의 이익만을 위해 건설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30년 후 미래까지 내다보는 ‘투자’로 보아야 한다.

경전철 사업도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경제적 타당성이 있고 미래지향적인 교통수단이라고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일도 없어야겠지만 현재 드러나는 문제점만 보고 경전철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교통전문가, 정치인, 언론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경전철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환상으로 인한 밝은 화장과 이익 단체의 단점 부풀리기로 인한 어두운 화장을 모두 씻어낼 수 있도록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서 국민들이 경전철의 ‘민낯’을 보고 제대로 판단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출처 : 경기일보 2012-1-12